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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어느 날 저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MSN 메일계정을 뒤지다가 폭로자가 연애시기 저에게 보냈던 이메일 두 통을 발견했습니다. 이메일이 두 통 밖에 없는 이유는, 당시 연애시기(2009년~2011년)의 대부분은 둘 다 컴퓨터를 쓸 경우 네이트온 메신저로 소통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간 두 사람의 주장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왔습니다.



폭로자의 주장: 한윤형씨는 연애기간 중 상당기간 동안(2009년~2011년) 자신을 일방적으로 상습구타했다. 


본인의 주장: 폭로자와 연애기간 중 상호간에 신체적 문제를 발생시킨 적이 있다. 나의 물리력 행사는 상대방의 기물을 동반한 폭행, 스토킹 및 주거침입, 기물파손과 자해협박, 선제폭행 등의 납득할 수 없는 행위 뒤에 몇 번 발생했다. 또 데이트폭력의 범주를 넓게 봤을 때 소리를 지르거나 핸드폰을 길바닥에 던진다는 식의 위협적인 행동을 한 바 있다. 여기에 대해도 잘못은 있지만 폭로자가 말하는 ‘매일 때렸다’는 식의 일방적인 상습구타는 사실무근이다. 




그런데 이것은 연애기간을 통틀어 제 잘못을 적은 것입니다. 이메일 내용의 함의를 이해하기 위해선 시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1) “데이트폭력의 범주를 넓게 봤을 때 소리를 지르거나 핸드폰을 길바닥에 던진다는 식의 위협적인 행동을 한 바 있다”는 것은 2009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폭로자의 고발문에서 ‘상습구타의 전조’ 정도로 묘사되었던 사건입니다. 저런 행동이 구타의 전조가 될 수도 있지만, 저런 행동을 하는 이들 모두가 사람을 때리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그 시기엔 저는 여동생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고 폭로자는 부모님집과 제 거주지를 자유롭게 오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습구타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폭로자는 제 구타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무슨 연유로 시작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적지 못했습니다. 



2) “나의 물리력 행사는 상대방의 기물을 동반한 폭행, 스토킹 및 주거침입, 기물파손과 자해협박, 선제폭행 등의 납득할 수 없는 행위 뒤에 몇 번 발생했다”고 말한 부분은 2010년 5월에서 6월 사이의 일입니다. 이 시기엔 여동생이 어학연수를 갔고 폭로자가 주로 제 집에 머물렀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을 증언할 이가 달리 없습니다. 


그리고 폭로자가 “기물을 동반한 폭행, 스토킹 및 주거침입, 기물파손과 자해협박, 선제폭행 등의 납득할 수 없는 행위”를 한 이유는 2010년 5월에 제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시에 폭로자에게 이별을 통보한 상태로 그걸 바람이라고 인지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본인의 거센 항의와 폭력과 이후 다시 연애를 하는 과정을 통해 오히려 ‘바람’을 피웠다고 인정하고 사과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고발할 수 있는 제 ‘폭행’이란 게 이 과정에서 있었던 물리력 행사인 것이며, 이 점에 대해서 당시에도 거듭 사과했고, 이후엔 신체적 문제를 일으킨 바가 없습니다. 물론 폭로자는 다르게 말합니다. 야구 경기를 보는 시기에 매일 같이 맞았다고 말합니다. 저는 2009년과 2010년에 야구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폭로자의 말을 받아들인다면 2011년의 일이 됩니다. 2011년엔 폭로자와 둘이서 원룸에 거주했기에 역시 달리 증인이 없습니다. 제 입장에선 이전에 그랬듯 “왜 아무도 상처를 보지 못했나?”(링크)라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폭로자의 고발에선 여동생이 등장하고 그때 이미 상습구타 당했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돌아온 여동생이 등장하는 사건은 2010년 8월경으로 추정되므로, 그 말이 맞다면 이미 2010년 시점부터 상습구타 당하는 상태였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제가 이전부터 폭로자를 상습구타하는 중이었다면, 2010년 5월에서 6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폭로자가 “기물을 동반한 폭행, 스토킹 및 주거침입, 기물파손과 자해협박, 선제폭행”을 했을 때 응당 평소하던대로, 혹은 그보다 더 심하게 폭력으로 응징하였을 것입니다. 



그럼 이제 2010년 6월 6일에 폭로자가 제게 보냈던 메일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제 메일함에 들어 있고, 웹사이트 주소가 포함된 캡쳐본도 만들어놓은 자료입니다. 당시 저는 폭로자가 문을 부수고 들어와서 자해협박을 한 사건 직후 너무 무서워 문을 수리한지 며칠 후 강릉에 있는 친구 집에 도망쳐 있었습니다. 



2010-06-06


제목: XXX이(이름 지움)


본문:

 

쓰는 편지야. 볼지 안 볼지는 모르겠지만.

 

 

멍때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봤어. 도대체 내가 왜 이런가, 에 대해. 찌질거리는 구여친답게 '내 안에 네가 너무 많다'고 하면 편하겠지만, 당신 성격상 코웃음칠 게 뻔할 테니, 그렇게는 말 안 할게.

 

 

당신도 알겠지만 나는 지금 많이 힘들다. 물론 당신도 그렇겠지. 23일 이후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나는 내가 혐오스러워. 고작 당신-이런 표현 썼다고 피식할 것 같지만- 같은 남자 때문에 내가 왜 이러나 싶다. 사실 당신은 별로 대단한 남자가 아니잖아. 나는 내가 적어도 이럴 정도로 남자에게 목을 매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당신이 날 첫 번째로 찬 사람도 아니고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관계를 끝내자고 공언한 적 있었지. 당신이 나와 사귀던 동안 바람을 피웠고, 그러고 나서 나에게 헤어지자고 한 건 심상한 일이야. 대단찮은 일이고.

 

 

다만 내가 왜 이랬는지를 생각해 보면, 결국 처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난 당신을 신뢰했어. 내가 당신에게 가지고 있던 깊은 신뢰와 우정은 그 사실을 안 순간 무너져내린 거야. 창문 하나 없는 방에서 전등이 깨졌을 때 같은 절망감이 들더라. 당신이 그 다음 날 그 여자에게 바로 사과를 했다고 했을 때-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당신을 죽이고 싶었어. 그럴만 한 일이었지만, 나에게 사과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는 사실에 더더욱. 신뢰를 배반해놓고도 책임지지 않는 당신이 끔찍했어. 나는 당신 때문에 넋이 나갔는데 당신은 어떻게 대응해라, 마라, 그러고 있고. 당신이 내가 어떻게 미쳐가는지 모르고 있었을 때, 그게 아무것도 아닌 가십거리인 양 떠들 것 같아서 더 그랬어.

 

 

나는 묻고 싶어. 당신은 나를 존중했던 게 아니었어?

 

 

나는 미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왔어. 당신도 알겠지만 나는 몇 가지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것도 역시 그런 노력이었고. 내 안에 정신병자가 하나 있다는 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내 상태가 정말 화가 나. 크게는 내가 광기도 죽음충동도 제대로 억누르지 못했다는 사실에, 작게는 방아쇠를 당긴 당신에게, 그리고 아직까지 당신에게 미련이 남은 나에게. 어제 일까지 포함해서, 결국 내가 저지른 자기파괴적인 행동들은 당신과 나에 대한 화풀이였어. 나는 당신이 나 때문에 상처를 받아 순수하게 기뻐. 이렇게까지 자신을 망가뜨리는 나를 끔찍하게 생각하지만서도.

 

 

그렇지만 동시에 나는 당신에게 미안해. 내가 이러는 것 때문에 미칠 것 같아 하는 모습을 볼 때,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 용서 받고 싶은 욕구가 난잡하게 교차해. 애증이 무언지 절절히 느껴지더라. 신뢰는 깨졌다가 다시 생겼지만, 당신과 함께 있을 때면 위안이 돼. 마음이 조금 가라앉아. 당신 속을 모르니 나와 이런 관계를 지속하는 이유가 그저 죄책감이려니, 동정이겠거니, 하고는 있지만, 이 알량한 위안이 지금 나를 살게끔 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야. 내 정신을 나락에서 끌어올리는 것 중 하나고. 이 점은 진심으로 고마워.

 

 

필사적으로 멀쩡해지려고 했지만서도 끝끝내 그게 안 되었어. 많이 추스렸다고 생각했는데도 그게 아니었고. 내 상태가, 지난 시간 동안 느꼈던 절망이 내 생각보다 심각했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어. 하루 빨리 제정신을 되찾고 싶다. 나는 아마, 내가 당신에게 한 번 더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한다면 나를 어머니 집에 유배시킬 거야. 나는 당신에 앞서 나를 지키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당신을 미치게 할 거라곤 생각하지 마. 아마 누군가 미치더라도 그건 당신이 아니라 나일 거야. 당신은 나와의 관계에서 일종의 가해자고, 언제나 그렇듯 먼저 마음을 끊은 사람은 아닌 사람의 미련이 낳는 일들에 데미지를 덜 입잖아.

 

 

지금쯤 한참 술을 마시고 있겠네. 부탁한 것 들어준 일은 정말 고맙게 생각해. 그리고 재차 삼차 말하지만 이것만큼은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 이 신뢰만은 배반하지 않았으면. 내가 앞으로 몸과 마음을 다잡고(쓰고 보니 엄청 상투구일세)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면 부디. 나한테는 여러 가지로 비중이 큰 일이야. 그래서-네가 YYY(이름 지움)에게 그 이야기를 했을 때 내가 확, 가버린 거고.

 

 

아무튼 이것저것 고마워. 글로 쓰니 좀 낫다. 구여친 루트를 좀 일반적으로 타 보자면, 답장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돼. 이만 접을게.



위 메일이 정황에 대한 저의 구체적인 설명에 더 부합하는지, 아니면 뭉뚱그려 상습구타를 당했다고 하는 폭로자의 설명에 더 부합하는지 판단해주시길 바랍니다. “방아쇠를 당긴”, “일종의 가해자”란 표현이 있지만 문맥상 ‘바람’에 해당한다는 것을 읽어내기 어렵지 않을 줄 압니다. 자기가 먼저 때린 게 아니라면 “방아쇠를 당긴”보다 더 직접적인 표현을 썼을 것이고, “일종의 가해자”가 아닌 그냥 “가해자”라고 썼겠지요. 



또한 위 메일의 작성자가 지난 며칠 간의 자기 행동에 대해서 변명을 하고 있는데, 그 변명하는 행동이 무엇일지요. 술자리에 나타나 사기그릇으로 제 머리를 내리쳐서 그릇을 깨고, 그 며칠 후엔 술이 취해서 문을 두들기다가 제가 반응하지 않자 문을 부수고 들어왔고, 간신히 내보낼 때 깨진 유리조각을 들고 나가면서 자살예고를 하였습니다. 전후로는 저의 집에 매일같이 진치면서 외출하는 제게 달려들었습니다. 강릉에 가서 메일을 받게 된 이유가 그것이었고, 이후엔 이사를 하였습니다. 이사간 후 트위터에 올린 몇몇 글을 보고 집을 찾아내서 또 집앞에 진치고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앞뒤 분간해보건대 위 메일 이후의 일로 생각됩니다. 이 맥락에 대해선 좀더 상세한 설명은 이 글(링크)을 참조해주십시오. 



참고로 메일에서 언급되는 “부탁한 것 들어준 일”은 헤어진 원인(‘바람’)과 헤어지는 과정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들(폭로자의 폭행)에 대해 주변에 함구해주는 것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가까운 몇 사람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지만, 저는 저 약속을 대략적으론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이후에 다시 한 번 사귀게 되었으니 안 지킬 방도도 없었죠. 그 결과 큰 피해를 보게 되었는지도 모르지만요.



이어지는 메일은 더 간단합니다. 2009년 2월의 메일입니다. 제 거주지를 떠나 자기 부모님 집에 간 후 네이트온 메신저를 켰는데, 제가 접속해 있지 않아 보낸 메일로 추정합니다. 별 것 아니지만, 그 시기에 부모님집을 오갔다는 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 역시 첨부합니다.



2009-02-09


제목: 뭐 뭐냐


본문:


방금 전까지 열심히 거시기 뭐냐

슷하리그를 보고 있다가

택용이가 털렸다가

그래서 님이 우오오 태굥아 ㅠㅠㅠ 했다가..

그랬는데 내가 집에 들어왔는데

아버지가 외출 중이라 몰컴을 시도했는데

근데 님이 없네여

......

님 웹서핑중독자 맞나여????????????

미 미안 넝담이야

암튼

뭔가 운동장 뛰러 나간 것 같은데

음..

적당히 뛰시오

뱃살 귀엽소

방금 아버지가 귀가하신 터라 몰컴질은 오래가지 못할 것 같소

앙뇽

총총총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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