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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폭력’ 폭로 사건 소송에 임하는 간략한 입장서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 2015년 11월 13일에 올린 글입니다. 당시 저는 6월의 사건 이후 5개월여 시간을 침묵하였고, 이 글 이후 다시 발언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그간 제가 공적으로 발언하지 않고 혼자서 썼다 지웠다 한 분량이 A4 100페이지는 넘을 것입니다. 하지만 짧게 쓰겠습니다. 아는 분도 있을텐데 제가 자숙을 선언했으면서도 명예훼손 소송을 들어간 이유에 대한 입장입니다. 폭로자가 SNS에서 소송에 대해 언급한 후 저에 대한 비난이 다시 늘어나고 있는데, 제가 어째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밝힙니다.



1. 폭로자의 주요 주장은 제가 1) 구타를, 2) 상습적으로, 3) 행거에 머리를 박을 정도의, 그 결과 멍이 들 정도의 강도로 4) 매번 그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했다는 것입니다. 추가적으로 5) 매일처럼 술을 마시고 매일처럼 한화 야구를 보면서 매일처럼 팼다는 외설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이 주장들은 1%의 진실도 없는 전적인 허위임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러분은 다르게 기억하지만 저는 한 번도 그 주장들을 인정한 바 없습니다.



2. 저는 당시에 ‘사과’했습니다. 폭로 다음날 한 번 사과했고, 며칠 후에 또 한번 사과했습니다. 폭로 가운데는 제가 휴대폰을 길바닥에 집어던졌다거나, 소리지르며 욕을 했다는 등 일부 사실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또 실제로 사귀는 과정에서 폭로자가 저를 때렸을 때 부끄럽게도 반격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저는 사건 이후 많은 분들이 오해한 것처럼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자처한 적은 없습니다만, 그런 문제에 관해서 남녀를 ‘동등한 대상’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는 견해를 지지했습니다. 그래서 그걸 저의 잘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어찌됐든 사과를 해야 한다 느꼈고, 그 급박한 상황에서 주변 몇 사람도 그렇게 강권했습니다. 저는 사과문에서 제가 저지른 잘못들을 성실하게 나열하였습니다. 폭로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밝히는 건 사과문의 특성에 어긋난다 생각했기에 자제했습니다. ‘기억이 다르다’는 완곡한 어휘를 썼지요. 저는 페미니스트 정체성이 있는 이들에게도 사과문 초안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제 여자친구를 제외하고는 검토를 거절했습니다. 어쨌든 사과문은 그렇게 쓰여졌습니다. 그 결과는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입니다. 저는 제가 동의하지 않은 사실관계를 시인한 사람이 되었고, 그 사실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변명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글을 잘못 썼습니다만, 지금이라도 글을 다시 읽어보신다면 상황은 제가 말한 그대로임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사과문을 그렇게 쓴 것은 제 잘못입니다만, 그렇다고 제가 그런 일을 범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정정을 합니다.



3. 저는 역시나 ‘사과문’에 상대방의 과거 잘못을 적는 것은 사과의 진정성을 떨어뜨릴 뿐더러 ‘2차가해라 비난받을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걸 ‘2차가해’라고 진심으로 믿지는 않았기 때문에 매우 솔직하게 ‘2차가해라 비난받을 우려’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자질구레한 상황들을 그저 ‘안전이별이 어려웠던 상황’ 정도로 표현하자, 여러분들은 제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키지 않지만 저의 부끄러운 상황들을 공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폭로자 사이에 있었던 폭력의 맥락 말입니다.



4. 2010년 5월의 상황입니다. 이별을 통보받은지 얼마 지난 폭로자가 여전히 저의 집에서 퇴거하지 않은 채로 있었습니다. 폭로자는 저의 부정을 알아냈다는 이유로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는 술집에 찾아왔습니다. 장소를 알려달라기에 제가 알려줬지요. 폭로자는 사기그릇을 들고 제 머리를 가격했습니다. 사기그릇이 정확히 둘로 깨지고 한쪽 조각이 귀를 스치고 지나가 저는 귀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저는 이별 통보 후에도 제 집에서 무전취식하던 폭로자가 드디어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싶어서 안도하며 친구와 술을 한차 더 마시러 갔습니다. 그러나 폭로자는 자기 집으로 간 게 아니라 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폭로자가 제가 부정을 저지른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제 방 컴퓨터로 사람들을 심문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메신저에서 듣게 되었고, 이에 화가 나서 술이 취한 채로 집으로 돌아가 폭로자를 제 방에서 끌어내는 과정에서 발로 걷어 찼습니다. 저는 이 행위에 대해 폭로자에게 그후 여러 차례 사과를 하였고, 제가 당한 일에 대한 사과는 한 번도 들은 일이 없습니다.



5. 그 직후 어느날의 상황입니다. 폭로자는 제 집에서 나간 후에도 자신의 분노가 폭발하면 제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저를 구타하려고 시도했습니다. 한번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간신히 떨쳐내고 전속력으로 뛰어서 도망간 적도 있습니다. 공정함을 기해 말한다면, 남녀가 바뀌었다면 살해위협을 느꼈을 상황이나 여기까지는 제가 남자이다 보니 당시 ‘조금 무서웠을’ 뿐 ‘아주 무섭지는’ 않았습니다(4번 사건은 예외입니다. 그때는 사기그릇이 제 정수리로 날아오는 순간 시간이 느리게 가는 체험을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 동네에선 못 살겠다고 생각하게 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새벽에 취한 폭로자가 저의 집 문을 깨고 저의 집에 들어오는 난동을 부린 사건입니다. 당시 제가 거주하는 집의 문은 알루미늄 샤시에 유리창이 결합된 형태여서 유리문을 깨면 문을 어떻게든 열 수 있었습니다. 저는 문을 열라고 난리를 칠 때부터 방문을 닫고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떻게 깼는지는 모릅니다. 방문을 열고 나와 보니 부엌 앞에 서 있어서 질겁을 하고 밀어뜨리고 넘어 뜨려서 저와 폭로자의 위치를 바꾸었습니다. 이게 제가 첫번째 해명문에 쓴 ‘식칼을 꺼낼까봐 겁났던 상황’의 전말입니다. 당시 저는 경찰을 불렀습니다. 결국 경찰이 한 명 왔지만 상황을 해결해주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몇시간 동안 제발 나가라고 폭로자에게 요구해야 했고 그 사람은 깨진 유리조각 중 하나를 집어들고 자살을 하겠다며 위협을 하며 떠났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제가 아는 폭로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어디 살고 있는지 아느냐 제발 좀 찾아가 보라고 부탁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 사건 직후에 겁에 질려 있다가 이사를 갔습니다. 예정된 이사이긴 했지만, 저는 집을 보면서 문이 철문인지부터 확인했습니다. 폭로자는 제가 트위터에 올린 새집의 위치와 특성을 보고 추적하여 새 집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다가 간신히 화해를 하고 또 한 번 사귀게 됐습니다.



6. 그외에 어느 날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귀는 도중 길거리에서 말다툼을 하다가 제 따귀를 하도 세게 때리기에 맞서 때린 적이 한 번 있습니다.



7. 여동생이 등장하는 사건에 대한 폭로자의 서술은 엉터리이며, 그것의 사실관계는 제가 해명서에 적은 그대로입니다. 여동생과 대화하면서 제가 미처 기억하지 못했던 상황들의 맥락도 보충했습니다. 여동생이 개입한 사건은 4~5의 사건 이후입니다. 그러니까 헤어졌다가 다시 사귄 상황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당시 폭로자는 저를 종종 때리는 게 습관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8. 제가 폭로자를 때리는 걸 본 사람은 방금 서술한 6번 상황에서 주변 행인들(그들은 저희가 누구인지 몰랐겠죠)을 제외한다면, 없습니다. 반면 제가 폭로자에게 맞는 모습을 본 사람은 제법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자주 맞았다는 걸 저도 잊고 있었습니다만, 폭로 이후 확보한 증인이 여동생과 지인 포함해서 칠팔명 정도 됩니다. 다행히도 대부분 시간 장소도 특정할 수 있는 증언들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저의 행위에 대해 여러 차례 폭로자에게 사과했던 반면 폭로자는 이와 같은 행위들에 대해 저에게 사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당시 저는 제가 남성이란 이유로 이런 일들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나 봅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9. 저는 폭로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며 위에 기술한 상황들을 이미 경찰에 가서 진술했습니다. 제가 경찰에 나가 진술한지는 벌써 세달이 되어갑니다만 폭로자는 이런저런 이유로 경찰 출석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저는 폭로자가 ‘기억의 왜곡’이 있었던 게 아니라 ‘악의적인 거짓말’을 했다는 강력한 심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0. 저는 사태 초기 사과문을 쓴 후 근신하면 누군가 조사를 해주러 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속했던 노동당이든, 여성단체든 뭐든 간에 말이죠. 하지만 폭로자가 조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운동세력은 아무런 조사없이 저를 죄인으로 낙인찍었습니다. 언론 역시 해명서가 존재함에도 폭로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썼습니다. 대중의 반응에 대해선 여러분들이 더 잘 아니 생략하겠습니다. 저는 30대의 생활인인 주제에 생계가 경각에 달해 부모님과 주변 지인들에게 손을 벌릴 지경이 됐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이 건에 대해 폭로자 일인에 대해서만 고소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지는 저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 개인에게는 지난한 과정이 시작될 텐데 제게 계속 낙인을 찍는다면 제가 저를 방어할 방법은 법에 호소하는 것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상 많은 비난을 또 한번 감수하면서 소송을 하게 된 이유를 썼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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