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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자의 주장은 어째서 거짓인가


이 블로그를 개시하면서 쓴 글(링크)에서도 적었듯 사법기관은 진실규명의 문제에 대해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폭로자의 주장의 모순이나 아귀가 안 맞는 부분, 맥락상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정리해서 올릴 생각입니다. 사건 직후엔 ‘2차가해’를 우려해서, 고소 이후엔 수사와 재판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서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제 주장만으로 진실규명이 이루어질 수는 없겠습니다만, 폭로자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는 심증을 지녔던 분들에게 다른 참조점이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폭로글을 ‘폭로문1’, 두 번째 폭로글을 ‘폭로문2’라고 표기합니다. 그 외 트위터나 간담회 자료 등은 따로 출처를 표기합니다. 


규명해야 할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폭로자의 주장: 한윤형씨는 연애기간 중 상당기간 동안(2009년~2011년) 자신을 일방적으로 상습구타했다. 


본인의 주장: 폭로자와 연애기간 중 상호간에 신체적 문제를 발생시킨 적이 있다. 나의 물리력 행사는 상대방의 기물을 동반한 폭행, 스토킹 및 주거침입, 기물파손과 자해협박, 선제폭행 등의 납득할 수 없는 행위 뒤에 몇 번 발생했다. 또 데이트폭력의 범주를 넓게 봤을 때 소리를 지르거나 핸드폰을 길바닥에 던진다는 식의 위협적인 행동을 한 바 있다. 여기에 대해도 잘못은 있지만 폭로자가 말하는 ‘매일 때렸다’는 식의 일방적인 상습구타는 사실무근이다. 심지어 연애관계 전체로 확장해서 볼 때엔 내 쪽이 데이트폭력의 피해자에 해당했다. 상습구타를 당한 것도 오히려 내 쪽이었다. 



제 주장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저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폭로자와 언론, 대중, 운동세력은 폭로자의 잘못된 주장이 진실이라는 전제 하에 저를 비난했습니다. 그러면 어느 쪽 주장이 더 신빙성이 있는지를 서로의 진술을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비교해봅시다. 누군가는 해야 했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의문점4: 왜 맞지 않은 기억만 구체적일까


폭로자는 트윗에서 폭로를 시작하면서 블로그 글을 남겼습니다. 블로그의 폭로문 두 개가 널리 읽히긴 했지만 트윗들 역시 중요합니다. 폭로 시작 때 트윗에서 몇 구절 가져와 봅니다.


“그러니 저는 08년부터 12년까지 나 패면서 연애했던 한윤형씨가 이런 글을 쓰는 게 얼마나 웃기겠습니까?”


“피해 사실을 말하는 것은 당사자가 나서지 않으면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 훼손의 위협을 상정하고 이러한 사실들을 기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 그치기를 바랍니다.”


“제 주변에는 제 피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공론화하면 제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에 따른 피해로부터 저를 보호하기 위해 침묵해 왔습니다. 폭로는 당사자가 나서야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한윤형씨의 데이트 폭력에 관하여 (링크) 긴 글은 아니고 줄 글입니다.”


“아무튼 한윤형씨가 저 말고 다른 여자친구는 안 때렸길 그리고 앞으로도 안 때리고 살길 빕니다~ 남자친구가 술만 마시면 나를 멍이 들 때까지 때리는데 안 헤어지고 계속 사귀는 사람은 저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므로~”


“아직도 한윤형씨가 나에게 자기를 예술가라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진심으로 화내던 사당역 4호선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가 생각나서 치가 떨린다 ㅋㅋㅋ”


사귀었던 기간은 2008년 초겨울부터 2012년 초봄까지입니다. 위와 같이 서술한 것은 사실상 사귀던 내내 맞았다고 주장한 것일 겁니다. 지금까지 적었던 바 저는 그게 결코 사실이 아니며, 사실임을 인정한 적도 없다고 말해왔습니다. 


폭로 이후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 저는 경황이 없었고 폭로내용을 꼼꼼하게 검토하지도 못한 채 대응했습니다. 블로그 폭로문 두 개 정도만 간신히 읽을 수 있었고,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마저도 내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건 발생 몇 달 후 우울증약을 먹으며 그나마 조금 나아진 상황에서 이 부분을 검토하다가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한윤형씨가 나에게 자기를 예술가라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진심으로 화내던 사당역 4호선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가 생각나서 치가 떨린다”


저는 이 사건이 기억납니다. 사당역 5번 출구 언저리 술집에서 지인들 몇과 함께 술을 마시고, 지인들은 떠난 후 있었던 일이라 합니다. ‘합니다’라고 적은 건 그날 저는 필름이 끊겼고, 다음날 ‘네가 어제 내게 성질을 부리고 고함을 쳤다’는 항의를 세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과를 했습니다. 


위의 서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것도 잘못이고 데이트폭력의 범주에 넣을 수도 있겠지만 구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본인조차 맞았다고는 안 적었는데, 상습구타에 대한 트윗 뒤에 배치됐다 보니 읽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구타를 연상했을 겁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이 뭐냐면, 이 트윗에서 등장하는 ‘사당역 4호선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가 폭로자가 적시한 유일한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화를 낸 이유도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습니다. 위에 소개한 일련의 트윗은 당시 트윗의 전체는 아니어도 순차적으로 개시한 일부입니다. 상습구타라는 본인의 서사를 제시하면서 나온 유일한 장소는 구타와 상관없는 장소입니다. 


이제 폭로문으로 가보겠습니다. 시간, 공간, 사유, 양상이 드러난 부분을 찾아서 옮겨봅니다.


(...) 저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지속된 한윤형씨와의 관계에서 지속적인 데이트 폭력을 당해왔습니다. 주된 폭행 장소는 한윤형씨의 자취방이었습니다. 본격적인 폭력은 2009년 정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증거가 언술밖에 없으니 저는 제가 당한 일들을 기억 나는 대로, 또 당시에 썼던 기록들을 바탕으로 기록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초의 징조는 2009년 이맘때쯤, 한윤형씨가 저와 언쟁하던 중 휴대전화를 길거리에 집어던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이 습관을 S씨 만나며 고쳤었는데, 네가 다시 시작하게 했다. 이건 네가 나를 화나게 해서 그런 것이니 너의 책임이다.' 라고 말했지만 저는 그 때 도망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괜찮을 거라 여겼습니다. 다음 날 그는 자신이 보인 폭력적인 언행에 대해 사과하였습니다만 그런 일은 여러 번 일어났습니다. 이윽고 그는 술을 많이 마시고 저에게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야구였는지 스타리그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자신이 즐겨 보는 스포츠 게임에서 자신이 응원하는 편이 졌다는 이유로 계속 짜증을 내고 있길래 '그만 좀 해라' 라는 제지를 할 때였습니다. 그는 제 제지에 굉장히 화가 나 있었고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와 한윤형씨는 언쟁을 시작했고, 짧은 언쟁 끝에 한윤형씨는 저를 한윤형씨 자취방 행거에 밀친 뒤 제 몸을 발로 여러 차례 가격했습니다. 한윤형씨로 인해 처음 멍이 들었던 것도 그 때였습니다. 


한윤형씨는 그 뒤에도 여러 번 저를 때렸고, 제가 추정하는 이유(사실 전혀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는 다음과 같습니다.


네가 나와 언쟁했기 때문에/나를 못생겼다고 무시해서/오늘 야구가 져서 기분이 나쁜데 등등. 그렇게 기분이 나빠져 있는 상황에서 저를 때린 한윤형씨는 스스로의 행위를 변호하기 위해 "네가 좀 구타유발자라서 때렸다"라고 덧붙이고는 했습니다. (폭로문1)


(...) 한윤형씨의 해명문을 읽으면서 저는 많은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치대는 행위는 타격이나 레슬링으로 묘사하는 반면 한윤형씨가 이마를 치는 행위는 그저 이마를 가볍게 치는 애정 표현의 일종이라고 묘사하는 기울어진 잣대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윤형씨의 잣대대로 표현하자면 저는 한윤형씨에게 여러 번 이마를 때리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윤형씨는 제게 "너 같이 깝치는 꼬맹이는 이마를 때려줘야 해" 라고 말씀하셨지요. 제게 자전거용 헬멧을 선물하며 "헬멧 쓰고 맞으면 안 돼?" 라고 말씀한 바도 있었습니다. 행동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이 기울어진 묘사가 설명하는 '구타유발자'라는 말은 서로의 부적절한 애정표현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다 나온 말도 아니었고, 너는 왜 나를 때리느냐는 말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나를 왜 때리느냐"는 사람에게 "솔직히 네가 좀 구타유발자기는 해" 라고 답하는 것이 제가 연인에게 치댔기 때문입니까? 


사실 공방이 무용하다는 것을 안다는 분께서 이렇듯 사실 공방을 하고자 하게 만드는 글을 쓰신 것이 굉장히 유감스럽습니다. 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한윤형씨의 자의적 편집을 일일히 기술하지는 않겠습니다만 말씀하신 그 사실관계에도 의도적 누락과 고의적 편집이 들어간 것은 사실입니다. 


예컨대 제가 한윤형씨와 헤어졌던 2010년도의 일에 대해서, 한윤형씨는 이를 상호 폭력이었다고 기술합니다. 앞서 저는 트위터에서 제가 완벽한 연인이 아니었으며 한윤형씨에게 "개짓"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지요. 그 상호 폭력이었다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 "개짓"입니다. 제가 당시에 폭력에 무감해져 있었다는 것이 그 일에 대한 변명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는 그 때 일어났던 상호폭력을 기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사건의 면면이 지나치게 자극적이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호사가의 입방아거리로 남기 쉬운 폭로라는 방식을 오용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에 대한 제 판단은 전과 같습니다. 제가 했던 일을 부정하고 싶지 않아 저 역시 도덕적으로 완벽한 피해자가 아니라는 점을 적시했고, 자극적인 언행 외에도 한윤형씨의 데이트 폭력에 대해 증언할 일은 많았습니다. 다만 '상호'라고 할 정도로 당한 만큼 때리려던 제 시도가 한윤형씨에 의해 좌절되었음은 본인도 인지하고 계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2010년 이후에는 때린 적이 없다고 단언하셨는데 저는 그것도 부정합니다. 한윤형씨가 '병원에는 자살 충동 때문에 간 것'이라 주장한 것과 엮어서요. 한윤형씨는 당시 야구를 보다가 술을 마시면 특정한 행동들을 보이고는 했습니다. 단순히 트위터에 무언가를 기술하는 것 뿐 아니라, 죽겠다며 소리를 지르고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치고 물건을 집어던졌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는 요지의 고함을 지르며 주변 사물과 스스로를 괴롭혔습니다. 그러한 한윤형씨를 말리려다 얻어맞은 적은 너무 많아 기술하지 않은 것입니다. 한윤형씨는 거의 매일 야구 경기를 시청했고, 거의 매일 술을 마셨고, 거의 매일 저를 때렸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날, 제가 한윤형씨에게 "어제 네가 나를 때렸다"고 말하면 한윤형씨는 "기억을 멋대로 재구성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해명서를 보고서야 한윤형씨의 시점에서는 제가 한윤형씨를 말린 일이 한윤형씨의 "영역"을 "침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견디다 못해 직접 가까운 신경정신과를 찾아 예약하고 한윤형씨에게 병원에 가 달라고 빌었습니다. 예, 빌었습니다. "오빠 제발 병원에 가자"고 몇 번이나 빌었던 것을 한윤형씨 역시 기억하실 것입니다. 두세 번 통원하다가 "너 때문에 돈이 없으니 병원에 다닐 수 없는데 왜 자꾸 병원에 가라고 하느냐"며 그만 두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 (폭로문2) 


사뭇 교묘하게 쓰여졌기 때문에 이 기술에 설득력을 느꼈을 사람들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간도 많이 지났으니 계속 저를 비난하시기에 앞서 한 번 더 꼼꼼히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전달하는 바는 주로 다음과 같습니다.


1) 구타 장소는 주로 자취방이었다.

2) 2009년 초여름쯤, 휴대폰을 길바닥에 던지면서 화내는 식의 전조가 있었다.

3) 스포츠경기에서 졌다고 짜증을 내면서 그것을 제지하는 자신을 때리기 시작했다.

4) 술에 취해 때렸고, 대체로 멍이 들었다. 

5) 야구경기를 보고, 만취 및 필름 끊긴 상태에서 때린 적이 많았다. “어제 네가 때렸다”고 말하면 부정했다.


먼저 1)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구타 장소가 주로 자취방이었는데 왜 훗날 “진심으로 화내던 사당역 4호선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가 생각나서 치가 떨린다”라고 표현했을까요? 앞서 말했듯이, 사당역 4호선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제가 화를 냈다는 저 사건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기술대로라면 그것보다 훨씬 심한 사건들이 매일 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껏 에스컬레이터가 생각나서 치가 떨렸을까요?


‘자취방’이라 적으니 뭔가 구체적으로 적은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만남의 시기가 길었던 만큼 장소는 계속 바뀌었습니다. 그러한 장소에 대한 언급이 위 폭로문에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사실상 유일하게 나오는 게 ‘사당역 4호선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이지요. 


2)는 사실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런 식으로 다툰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이건 사당역 8번-9번 출구 근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근처에 국민은행이 있었습니다. 시기도 아마 폭로자가 적은 것과 흡사할 것 같습니다. 역시 흥미로운 부분은, 이렇게 구타는 아닌 이야기의 시공간 서술이 그나마 정확합니다. ‘2009년 초여름쯤’(폭로가 2015년 6월에 있었기에 ‘이맘쯤’을 이렇게 해석합니다)이란 말은 전체 폭로에서 나온 거의 유일한 시간서술입니다. 연애 기간이야 남들도 다 아는 얘기일 수밖에 없으니, 연애 기간 내내 맞았다는 식의 서술을 뺀다면요.


또한 3-4-5)가 거듭 주장되고 있는데, 제 해명문에 대해 반박한 한 구절을 다시 들춰봅시다. 


(...) 한윤형씨의 해명문을 읽으면서 저는 많은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치대는 행위는 타격이나 레슬링으로 묘사하는 반면 한윤형씨가 이마를 치는 행위는 그저 이마를 가볍게 치는 애정 표현의 일종이라고 묘사하는 기울어진 잣대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윤형씨의 잣대대로 표현하자면 저는 한윤형씨에게 여러 번 이마를 때리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윤형씨는 제게 "너 같이 깝치는 꼬맹이는 이마를 때려줘야 해" 라고 말씀하셨지요. 제게 자전거용 헬멧을 선물하며 "헬멧 쓰고 맞으면 안 돼?" 라고 말씀한 바도 있었습니다. 행동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이 기울어진 묘사가 설명하는 '구타유발자'라는 말은 서로의 부적절한 애정표현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다 나온 말도 아니었고, 너는 왜 나를 때리느냐는 말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나를 왜 때리느냐"는 사람에게 "솔직히 네가 좀 구타유발자기는 해" 라고 답하는 것이 제가 연인에게 치댔기 때문입니까? (...) (폭로문2)


이마를 치는 행위는 꿀밤이었습니다. 이외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보십시오. 아무래도 3-4-5)와는 많이 다르지 않나요? 술에 취해서 막무가내로 폭력을 휘두르면서 이마를 쳐서 멍을 들게 하는 행위가 뭔지 상상이 되십니까? 저는 평생 각잡고 주먹으로 사람의 안면을 가격한 적 없는데, 제가 그런 사람임을 강변하는 문제를 떠나서, 이마를 조준해서 때려서 멍을 들게 만드는 구타법이 뭔지는 종시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자전거용 헬멧을 선물하며 "헬멧 쓰고 맞으면 안 돼?"라고 말씀한 바도 있었>다니, 술이 취해 멍이 들도록 때리고 난 후 다음날 기억을 잃는 것과는 상관없는 일 아닙니까?


저 말도 실제 있었던 일이므로 기억이 납니다. 자전거도 함께 사줬는데 헬멧 사준 얘기만 적으셨네요. 어쨌든 헬멧 쓴 모습 보고 “그 머리 위로는 꿀밤 때려도 되겠지?”란 취지로 말했고 “그럼!”이라고 답했으며 제가 헬멧을 치면서 “내 손이 아프네”라고 하자 “나는 하나도 안 아프다! 나는 하나도 안 아프다!”고 하였습니다. 보통 그러고 있으면 제가 “깝친다”라며 웃었습니다. 저게 단순히 비난만도 아니었고 ‘깝치미’라고 표현한 적도 있지요. 제가 그 표현을 “헬멧 쓰고 맞으면 안 돼?”라고 했다손 치더라도 이건 구타에 대한 묘사가 아니죠. 


다시 한 번 저 부분을 상세하게 읽어보시지요. 이마를 치는 행위였다고 본인 글에도 나와있습니다. 헬멧 위로 이마를 때리는 게 왜 구타입니까? 꿀밤 때리지 말라고 하는데 종종 치는 습관이 있었단 게 모자란 일일 순 있다 치더라도 이게 어떻게 상습구타입니까? 상습구타를 주장하면서 이렇게 전혀 결이 다른 엉뚱한 사건들만 상세하게 서술하는 게 정말이지 이상하지 않은가요?


물론 제 입장에선 하나도 안 이상합니다. 그런 적이 없기 때문이죠.    


한번 해당 기간 동안 제 거주지와 거주양상을 적어보겠습니다. 



연애 초~2010년 6월 동작구 사당동 투룸         

: 제 부모가 보증금을 지불한, 저와 여동생이 함께 사는 곳이었습니다. 더구나 폭로자는 이 시기엔 경기도 고양시와 충청북도 논산시에 있는 가족집에 드나들었습니다. 상습구타가 있었고 멍이 들었다면 제 여동생과 자기 가족들의 눈을 피해야 했습니다. 폭로문엔 그에 대한 기억이나 서술이 전혀 없습니다. 여동생은 폭로자가 한 번 집에 들어오면 집안일 하나 거들지 않고 십수일씩 묵는 행위를 지겨워 했습니다. 후에 찾아본 바, 흔히 상습구타 당하는 이들은 헤어지진 못한다 하더라도 부모님집으로 빨리 간다든지 하는 식으로 공간을 분리하면서 대응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2010년 2월 여동생이 어학연수를 떠났고 집이 비면서 폭로자는 이 집에 좀 더 편하게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부모님집을 가는 게 어렵지 않을 시기였는데 거의 이 집에 머물렀습니다. 여기서 진보신당 지방선거 선본에 직장을 잡고 두달 여간 출근하기도 했습니다. 즉 이 때는 부모님집을 거의 오가지 않았고 제 여동생도 없었지만, 그 중 상당기간 동안 출근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5월에 저와 헤어지는 과정(후에 다시 사귀게 됩니다만) 이후 본인이 먼저 폭행, 기물파손 및 가택침입, 스토킹을 하여 저와 물리적 문제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후 제가 거의 도피하다시피 강릉으로 여행간 상황에서 받은 편지에선 상습구타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이 메일 내용은 훗날 발견하여 이 블로그에 소개한 바 있습니다. 


2010년 6월~2011년 4월 성동구 성수동 투룸 

: 역시 제 부모가 보증금을 지불한, 저와 여동생이 함께 사는 곳으로 만든 곳입니다. 폭로자의 기술 중엔 이 도중에 여동생이 개입했다는 서술도 있으나 저와 제 여동생은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더 이상 이 구질구질한 일에 저 외의 가족이 얽히기 바라지 않으므로 이 부분은 상세하게 분석하거나 해부하지 않았습니다. 자전거 헬멧 에피소드는 이 공간에서 생깁니다. 서울숲이 멀지 않은 동네여서 이 시기 자전거를 많이 탔습니다. 


2011년 4월~연애 끝 관악구 서림동 원룸

: 부모님과 사이가 나빠지면서 독립하여 만든 원룸입니다. 그나마 자취방에서의 상습구타가 가능했다면 이 공간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따져보면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그 부분은 차후 다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그나마 상식적으로 볼 때 제가 상습구타를 할 수 있는 시기는 마지막 서림동 자취 시기 뿐입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저는 폭로자의 외출을 통제한 바도 없고, 그는 여기저기 자유롭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녔습니다. 이 기간 동안 상습구타를 당했다고 호소하는 것에 대해서도 다만 억울함이 있을 뿐입니다. 


스포츠경기로 돌아와 봅시다. 제가 스타리그인지 야구인지를 보고 때린 게 처음이라 했습니다. 이미 이 블로그에서 몇 번 설명드렸습니다만 만일 야구를 보고 때렸다면 2011년의 일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2009년 시즌과 2010년 시즌 야구를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화 이글스팬이고, 그걸 안다면 왜 그랬는지 짐작이 어렵지 않습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한화 이글스는 추락을 시작했고, 겪어보지 못한 암흑기의 초입에서 한동안 저는 야구를 보지 않았습니다. 역겨운 교수 놈 하나는 제가 맨날 지던 그 팀 팬이었으니 폭로가 사실일 거라고 추정하더군요. 제발 지옥에나 가길 바랍니다.


2011년부터 야구를 봤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는 있는가. 이 부분 답답합니다. 지인들은 다 아는데 그걸 사람들이 믿어줄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렇지만 트위터가 있습니다. 대체로 다 지워졌겠지만 사람들 기억은 있을 겁니다. 


저는 야구를 끊었다가 하도 당시 하던 트위터에서 야빠들의 야구하던 얘기가 많이 나오기에 2011년 시즌을 ‘시험 삼아’ 보려고 했습니다. 트위터리안이 야구를 보기 시작하면 타임라인에 야구 중계 비슷한 걸 하게 되는데 그게 제게는 2011년부터의 일이었습니다. 트위터 자체는 2010년부터 했을 테니까요. 


2011년 그 해는 ‘야빠’들은 대략 알 텐데 한대화 감독의 ‘야왕 신드롬’ 시즌이었고 그래서 야구를 즐겁게 보았지 괴로워하며 보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화 야구에 괴로워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시즌부터 몇 년간입니다. 그것도 트위터 하던 사람들이라면 다들 기억에 있을 겁니다. 폭로자는 트위터 사람들이 모두 관람한 저의 야구 스트레스를 내가 자신을 때렸다는 증거 비슷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덕분에 약간의 정황증거도 생겼습니다. 양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제가 말한 바가 사실이라는 걸 기억해낼 수 있을 겁니다.


너무 길어졌으니 남은 얘기는 다음 편으로 하겠습니다. 놀랍게도 아직 두 편 정도가 더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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